귀찮아서 부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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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라는 게임의 스탯 창을 열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긴 주말 저녁, 컴퓨터를 켜고 예전에 찜해둔 새 RPG 게임을 시작했다. 화면에 웅장한 오프닝 BGM이 흐르고, 마침내 캐릭터 생성 화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의 안내에 따라 튜토리얼을 깨고 차근차근 레벨을 올리다 보면, 언젠가 캐릭터의 운명을 결정할 스탯 포인트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온다.

RPG게임을 할 때면 늘 이 화면 앞에서 한참을 머물게 된다.

한정된 스탯 포인트를 어디에 찍을지—힘에 올인할지, 지능에 몰빵할지, 아니면 이것저것 찍어보는 잡캐로 가볼지. 마우스 커서가 ‘확인’ 버튼 위에서 멈칫거리는 그 시간이 어쩌면 게임에서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이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만으로 가득 찬 순간.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나는 스탯 포인트를 대체 어디에 찍고 있는 거지?’

지난 글에서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 아이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사람. 뷔페에서 모든 메뉴를 사이좋게 딱 하나씩만 가져오던, 지극히 평등하고 정직한(?) 식성의 소유자. 그때 나는 ‘나를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정작 그 이후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솔직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로 해보기로 했다. 나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발굴해보는 일. RPG로 치면 드디어 나만의 캐릭터 스탯을 제대로 찍어보기로 한 셈이다.

노트를 펼치고 펜 끝에 힘을 주어 페이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단단한 세로선 하나를 내리 그었다. 마치 우유부단했던 지나온 날들과 작별이라도 고하듯 선명하게 그어진 국경선 좌우로 두 개의 영역이 생겨났다. 왼쪽엔 ‘좋아하는 것’, 오른쪽엔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부터 적어 내려갔다.

가족. 이건 스탯으로 치면 기본 스탯이다. 올리지 않아도 늘 거기에 있지만, 사실 가장 높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캠핑. 모닥불 앞에 앉아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캔맥주를 따는 순간—세상의 모든 알림음이 꺼진 채 온전히 ‘지금’만 존재하는 시간. 스탯 포인트로 치면 ‘행복’ 스탯에 해당하겠다.

정보통신분야.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 RPG 게임.

1차적으로는 이런 것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좋아하는 것’을 적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적을 때 펜이 더 빨리 움직였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의 칸에는, 딱 세 글자면 충분했다.

귀찮음

손톱이라는 이름의 보스 몬스터

나는 귀찮은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더 싫어하는 것 같다. 귀찮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그 강도가 좀 다르다.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기피하는 현상까지 있으니까.

대표적인 것이 손발톱 깎기다. 특히나 손톱—이 녀석은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건지 모르겠다. 다 큰 어른이 손톱깍기를 들 때마다 “또 너냐”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RPG로 치면 10분마다 리스폰되는 짜증나는 잡몹 같달까. 경험치는 안 주면서 꼬박꼬박 나타나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갉아먹는 존재.

하지만 이 사소한 불쾌함이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귀찮음이라는 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해야 한다’고 아무리 합리화해도, 몸과 마음이 ‘싫다’고 외치면 그건 진짜 싫은 것이다. 체면이나 사회적 기대 같은 필터가 끼어들 틈이 없는, 가장 날것의 솔직한 감정이 바로 귀찮음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투자 세계에서도 같은 패턴을 발견했다.

주식 시장에도 귀찮은 보스 몬스터들이 잔뜩 있다.

매일 아침 차트를 확인하고 캔들의 꼬리 길이를 재야 하는 단타 트레이딩. 분기마다 섹터를 갈아타며 사이클의 파도를 타야 하는 로테이션 전략. 실적 발표 시즌마다 컨퍼런스 콜을 들으며 가슴 졸이는 개별 종목 관리. 이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전율이 흐르는 레이드 보스전이겠지만, 나에게는?

손톱 깎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RPG에서 현명한 플레이어는 모든 보스를 다 잡으려 들지 않는다. 자기 캐릭터 빌드에 맞는 보스만 선택적으로 공략한다. 엄청 화려고 강력한 마법으로 무장한 데미지 딜러 법사가 마법 내성이 높은 드래곤에게 자기 최고의 마법인 메테오를 날리는건 용감함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자기 빌드를 모르는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귀찮아하는 방식의 투자는, 아무리 수익률이 좋다 한들 결국 오래 가지 못한다. 귀찮은 건 포기하게 되고, 투자에서의 포기는 대부분 최악의 타이밍에 찾아온다—바닥에서 던지고 꼭대기에서 다시 올라타는, 그 익숙하고도 뼈아픈 패턴.

내가 귀찮아하지 않는 투자법만이 10년, 20년을 함께 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주식도 역시 좋아하는 것들을 목록화해보기로 했다. 노트의 새 페이지를 펼치고, 이번에도 역시 왼쪽엔 ‘좋아하는 주식’, 오른쪽엔 ‘싫어하는 주식’이라고 적었다.

귀찮음의 저울 위에 올려본 포트폴리오

나에게는 ‘귀찮음의 저울’이라고 부르는 투자 판단 기준이 있다.

모든 종목을 이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한쪽엔 그 종목이 요구하는 ‘귀찮음의 무게’, 반대쪽엔 그 종목이 돌려주는 ‘보상의 무게’. 기울어지는 방향에 따라 내 포트폴리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RPG의 장비 선택과 같다. 전설급 대검의 공격력이 아무리 높아도, 힘 스탯이 부족해서 들지도 못하면 그건 그냥 인벤토리만 차지하는 고철 덩어리다.

날 귀찮지 않게 하는 주식들.

첫 번째로 저울 위에 올라온 건 SCHD다.

SCHD는 정원 구석에 심어둔 소박한 귤나무 같은 존재다.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며 애태우지 않아도, 계절을 잊지 않고 때가 되면 묵묵히 노랗게 익은 배당이라는 열매를 건넨다. “어, 왔어? 올해 열매도 제법 잘 익었어” 하면서. 아무런 불평도 없이, 과도한 관심이나 보살핌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사이클에 따라서, 수익률에 따라서 사고파는 주식들은 나에게 귀찮음의 끝판왕이다. 이번 달에 사고, 다음 달에 팔고, 그다음 달에 다시 사고—이런 방식은 1주일마다 리스폰되는 손톱 깎기 잡몹의 주식 버전이다. 아무리 소소한 경험치(수익)를 준다 해도, 나는 그 퀘스트를 수락하지 않는다.

SCHD의 귀찮음 지수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매수 버튼을 누른 뒤에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배당이 들어오면 “허허” 하고 미소 짓고, 주가가 빠지면 “싸게 더 사지 뭐” 하고 덤덤하게 읽던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이 느긋함, 이 무던함이 바로 내 빌드에 완벽히 맞는 장비다.

하지만 수익률이 좋은 주식도 좋아한다.

이 부분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게으른 투자자이지만, 욕심 없는 투자자는 아니다. 시원한 캔맥주 앞에서 배당금 알림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나스닥이 로켓처럼 솟구치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건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이다. RPG로 치면 파티원이 보스를 잡고 전설 아이템을 먹는 걸 로비에서 구경만 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내 포트폴리오에는 빅테크나스닥 지수도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수익률이 공짜는 아니다. 대부분의 수익률이 좋은 주식은 꽤나 귀찮은 것들이 많다. 변동성이 크고, 뉴스에 민감하고, 때때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들을 선사한다. 실적 발표 날에는 장 마감 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알림을 켜놓아야 하고, 매크로 뉴스에 따라 하루 만에 3~5%가 출렁이는 건 일상이다.

이건 마치 시험 전날의 벼락치기와 비슷하다. 하기 싫다. 솔직히 너무 귀찮다. 하지만 안 하면 성적표가 처참해진다는 걸 안다.

내 마음속 저울에서 이 판정 기준은 명확하다.

수익률이라는 추가 귀찮음이라는 추보다 무거울 때만, 그 종목은 내 포트폴리오에 남을 자격을 얻는다.

빅테크의 경우, 솔직히 귀찮음이 꽤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이 녀석들이 보여준 성장과 혁신의 무게가, 내 귀찮음의 무게를 간신히—정말 간신히—이기고 있다. 만약 저울이 반대로 기울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SCHD와 서재의 평온한 세계로 완전히 귀환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사이클에 따라 사고팔아야 하는 종목들, 트렌드를 매일 쫓아야 하는 테마주들, 뉴스에 따라 춤을 춰야 하는 이벤트 드리븐 전략—이런 것들은 아무리 수익률이 좋다 한들 내 저울 위에 올라올 자격조차 없다.

현명한 RPG 플레이어는 모든 퀘스트를 수락하지 않는다. 보상이 아무리 화려해도, 자기 빌드에 맞지 않는 레이드는 과감히 넘긴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전략이다. 그리고 이 전략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취향을 만들어 가는 중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의 첫걸음은 의외의 장소에서 시작되었다. 거창한 철학책이 아니라 손톱깎이 앞에서. 대단한 투자 이론이 아니라 ‘귀찮다’는 세 글자에서.

취향이 없었던 사람—뷔페에서 모든 메뉴를 하나씩만 담던 사람—이 이제 조금씩 자기만의 접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여정은, 결국 싫어하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귀찮은 게 정말 싫다’는 이 솔직한 고백 하나가, 투자에서도 삶에서도 나만의 기준선이 되어주고 있다.

귀찮음은 약점이 아니다. 나를 가장 솔직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어떤 투자자인지를,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 더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SCHD가 묵묵히 배당을 건네주는 동안, 나는 캠핑 의자에 앉아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스마트폰의 증권 앱 알림이 조용히 울린다. “이번 분기 배당금이 입금되었습니다.”

나는 그 알림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은 뒤, 다시 모닥불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 아이가 물어볼지도 모른다. “주식이 뭐에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글쎄, 너희와 이렇게 모닥불 앞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는 친구란다.”

이 느긋한 투자의 끝에서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수익률 몇 퍼센트가 아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캠핑 자리를 조용히 지켜주는 파수꾼. 내 투자가 그런 존재이길 바란다.

나는 지금, 천천히 나의 취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목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수정되고 추가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투자에서도, 삶에서도.

…그래도 손톱은 여전히 귀찮다. 제발 좀 천천히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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